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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4일 수요일

용산참사를 B.F. 스키너가 봤다면...

자유가 있다면서 강요하는 무책임한 책임지우기


 


스키너는 대표적인 행동주의 심리학자이다. 상과 벌로 '모든' 인간(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과격하게 주장하다 보니 많은 다른 심리학자들로 부터 비판을 받았다. 인지주의 심리학자는 인간의 내적 처리과정에 무관심하다고 비판했고, 특히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을 대상화하고 인간의 잠재성과 존엄성을 무시했다며 '감정을 썩어' 비판했다. 심리학 수업에서 행동주의와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형성(Operant conditioning)은 빠지지 않는 주제지만 항상 동물과 인간을 동일하게 대하는 그의 태도에 불쾌함을 느끼며 수업은 정리된다.






 

우연한 기회에 스키너 박사가 집필했다는 책 이름을 듣게 되었다.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Beyond Freedom & Dignity)> 연구 대상을 철저하게 인간의 외적인 행동에 국한하고, 그 방법에 있어서도 가치중립적인 자연과학에서 사용한 것을 이용한 분이 "자유"와 "존엄"을 언급한다는 것이 좀 이상하게 들렸다. 그것도 그것을 "넘어서겠다"고 까지 하니...(정말 조금 넘어 선 것 같다..)

 

이런 궁금증 때문에 이책을 읽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시간을 투자한 보람이 있었다. 스키너 박사가 다른 심리학자들로 부터 비난 받을 만큼 '비인간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선 스키너 박사는 인간 문명의 발전이 결국은 자기파괴적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했으며, 문제의 해결책으로 "인간 행동의 변화"가 유일하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선한 마음(내적 인간)이 환경파괴를 막을 수 없으며, 인간의 분노(이 역시 내적 인간)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환경파괴와 전쟁의 원인은 바로 "인간의 행동(외적인간)"이라는 것이다.

 


이쯤에서 나는 스키너가 심리학자라기 보다는 사회과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심리학자들은 인간행동의 원인을 알기 위해 내적 자아(성격, 태도, 심리상태, 동기,인지구조 등)를 탐구한다. 하지만 그는 '환경'을 그 원인으로 주목한다. 환경이라는 자극(Stimulus)과 인간(또는 유기체)의 반응(response)의 상호작용을 탐구했던 것이다. 스키너의 입장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모두 환경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즉 인간의 자율성은 사라지고, 환경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그리고 인간은 환경 탓만을 하는...별로 달갑지 않은 형국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왜? 인간에 절대적 영향을 주는 환경 역시 인간이 조작(operation)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방향성을 갖고 조작할 것인가 하는 '가치'와 '의미'의 문제를 따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스키너 박사가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그가 학문에 정진하고 자신의 이론을 설파하는데 열정적이었던 동기(또는 의도)는 매우 인간적이었던 것 같다. 스키너는 자신의 연구에서 철저하게 가치중립적이었지만, 연구결과의 활용에 있어서는 역시 철저하게 가치중심적이었던 것 같다. 그는 인간에게 자유가 있다고 말하면서 그에 따르는 무책임한 책임지우기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용산참사를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시각은 크게 2가지다.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시각과 "인간의 존엄성을 경시한 공권력의 무자비한 집행"이라는 시각이 그것이다. 만약 스키너에게 용산참사의 원인과 해결책을 묻는다면 어떻게 답을 할까?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한 공권력의 집행(자극)을 통해 폭력(반응)을 소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을까? ... 아닐 것 같다.

 


그는 분명 철거민들이 망루를 설치하고 화염병과 새총을 쏘는 폭력의 원인을 탐색하기 위해 이들이 놓은 일상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을 확인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이유에서도 법과 원칙은 지켜져야 하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시각을 진리로 받아 들인다. 그리고 이 진리의 밑바탕에는 "인간은 스스로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환경을 탓하는 것은 비겁하고 미숙한 인간의 핑계일 뿐이다"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스키너 박사는 이 대목에서 분명히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철거민들이 처한 '환경'을 변화 시킨다면 이들의 폭력적 행동은 충분히 소거될 수 있다"고....

 


가치중립적인 과학에 집착했던 그가 유일하게(하지만 강력하게) '가치'를 언급한 부분이 있어 마지막으로 인용한다. 철거민의 폭력행동을 소거하기 위해 '폭압적인 공권력'을 사용할 것인가, 철거민의 '환경을 조작(operantion)'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스키너 박사는 말년의 연구를 통해 자신의 이론을 현장에 적용하는 중요하고 핵심적인 팁을 강조했다. 바로 부정적 강화(벌)는 효과도 오래가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이 있지만, 긍정적 강화는 장기적으로 효과적인 행동변화를 통해 인간을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과학적 분석은 또한 '가치'와 관련 있는 질문들을 제기한다. 행동기술을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용할 것인가? 이런 이슈들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행동의 과학은 계속 거부당할 것이다. 아마도 행동의 기술이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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